어렸을 땐, 수틀리면 '한번 붙어보겠다', 선을 넘으면 '한 대 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상황 판단보다 내 감정이 좀 더 앞섰고, 조금은 전투적이었다.
나이를 먹으니 소심해졌다. 마치 '애도 아니고, 주먹을 뻗는 게 유치하고, 싸우는 것은 귀찮고, 어른이 되었으니 자제해야겠다.' 라는 그런 겸허한 마음으로 참는 것이 아니다. 그냥 손해가 두려워서 감정 해소보단 잃을 것이, 걱정이 앞서 생각나서 소심해졌다. 나도 모르는 새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나이에 따른 육체적 쇠락에 의한 것이 아니다.
과거에 육체를 믿고 과시할만큼 육체가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애써 포장하면, 성격이 유해졌다고 말하지만 유해진 게 아니라 야만성을 잃고 겁쟁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느 누군가는 문명인이라면 야만성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문명인이 된 거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사실 문명이야 말로 야만성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야생은 육체적으로 치고 받고 결판을 깔끔하게 내리지만, 문명인들은 가면 뒤에 숨어서 이리저리 각을 잰다. 주먹이 나갈 수 없으니, 온갖 술책을 쓰고, 방법을 동원해서 상대를 굴복시키려든다. 그러다 그마저도 안되면 최후의 순간에 정 한 대 칠 수 있다는 각오로 살아간다. 평상시에는 단단하게 가면을 쓰고 있으나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선 가면을 언제든지 벗어 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린 그런 가면 속 야만성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코 베이고 눈 베이고 귀가 베일 테니. 현대 사회에선 야만성이 거세된 이들이 많다. 좋게 말하면 성숙한 문명인이고. 나쁘게 말하면 제 것을 뺏겨도 반항조차 잘 못하는 호구고. 그리고 이 험난한 사회에서 그들의 상당수는 매력을 잃어버린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전부 파악하는 것이다.
우린 교양있고, 문명적인, 이성적인 사람이라 말하지만, 무의식이든, 본능이든 귀신같이 견적을 짜는 것이다. 이 사람이 노예정신 투철한 호구인지, 결정적 순간에 가면을 벗어던질 수 있는 야성을 지닌 사람인지. 이는 필자가 오래 전에 썼던 '마초적이지 않은 마초남이 인기가 많다'는 것과 궤가 비슷하다.
야만성을 잃어 버린다는 것.
자존감을 잃어버리고 노예정신을 갖는다는 것.
호구기질을 지닌다는 것.
사회는 늘 문명을 강조하며, 아만성을 버리라 말하지만, 이는 이미 충분히 야만적인 현대사회에서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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