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새벽 편지

어둠속검은고양이 2018. 6. 20. 03:36

낮잠을 잠시 잔 탓인가.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노트북을 펼칩니다.


...분명 컴퓨터라는 것이 없었다면, 이렇게 글을 많이 쓰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손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거든요.


하지만 그렇기에 잉크를 묻혀가며 손으로 쓰는 글이 로망이 있는 법입니다.



새벽감성이라고 하지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새벽녘에 감성에 취해 글을 쓰고서 다음날 이불킥을 날리곤 합니다.

확실히 어두운 밤은 무언가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방이 어둡고, 고요한 적막이 이따끔씩 깨져나가는 것이 끄적끄적하고 싶게 만듭니다.

제가 이렇게 무언가 적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도 같은 이유지요.


분명히 좀 전까지는 약간의 오글거림이 있는 표현과 소재와 글이 생각났습니다만

의자에 앉으니 이상하리만큼 남아있는 것이 없네요.


그래서 이렇게 익명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전 언어의 표현을 좋아합니다.

글을 쓴다고 할 때, 뭔가 기교가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속 빈 강정,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라 꾸중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수식어구, 수려한 미사여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향기같은 표현을 좋아합니다.

슬며시 다가와 마음을 건드리는 것과 같은 표현말입니다.

이는 소심한 내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글로 표현할 수 있을 소재가 사그라져 갑니다.

손가락을 놀리고 싶은데, 내용이 없습니다.

마치 부표없이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내 인생처럼 말이지요.


돌이켜 보면, 전 외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곤 했습니다.

불행히도, 내 자신을 이야기하고 싶어도 없는 모습이 나였으니까요.

그래서 전 대학생 때 저의 색체를 무채색으로 비유하곤 했습니다.


사람은 꼭 색체를 지녀야만 할까요?

그냥 밋밋한, 그저그런 색은 잊혀져야만 할 존재인가요?

과거 "너만의 색체가 없는데 누가 널 매력적으로 보겠느냐"는 소릴 들었습니다.

늘 노력하고, 경쟁하고, 더 나은, 더 좋은 것을 위해, 욕망이 있는 삶만이 삶인가요.

그저 이렇게 머뭇거리며, 이름도, 뭣도 없이, 그저 살다가 가만히 사라질 삶은 어떤가요.


그래요.

밋밋한 색은 누가봐도 밋밋하겠죠.

'밋밋'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쉽게 잊혀질, 기억할 가치가 별로 없을 것이죠.


한 때는 무채색도 그 자체로 색이라며 애써 긍정적으로 포장하려 한 적도 있었죠.

여전히 난 밋밋하게 살아왔고, 밋밋하지만 그저 그렇게 살고 싶어요.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패배자, 도망자, 무능력자라 말해요.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런 시선들을 견뎌낼 수 없어, 애써 경쟁자처럼 살아가려고 하고 있어요.


이야기가 쓸데없이 무거워졌네요.


밤의 장막은 빛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소근거리는 소리를 뚜렷하게 만들며, 어둠으로 속내를 털어내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밤만 되면 감성에 취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