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날, 쭈그려 앉아 라면을 끓이며 너를 떠올렸다.
지금과는 달리 라면은 가난을 상징했지만, 그것은 너만큼이나 머나먼 이미지였을 뿐이다.
비와, 너와, 라면.
서로에게의 추억들이 누군가에겐 가난함, 그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까.
난 가난을 모른다.
실제로 가난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부모님께서 애써 숨긴 덕분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난 가난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다 살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비싸고 좋은 것을 갖기 위해선 돈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 자명한 이치였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가난은 말그대로 교과서의 이미지와도 같았다.
빡빡하게 산다는 것은 말 그대로 빡빡하게 사는 것일 뿐이었다.
어차피 가난은 상대적인 것이었고, 절대적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의 가난은 교과서 속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처럼 80년대, 하꼬방, 매 끼니 라면 먹는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하꼬방의 라면보다도 하숙집에서 생활하던 내가 더 가난한 것은 아니었을까.
판잣집이라도 집 없이 방 하나에 얹혀 사는 것보단 나았을 테니까. 그래도 그들의 이미지가 '가난하다'는 인식이 박힌 것은, 달라질 수 있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지닌 대학생이라는 달리, 달라질 것이 없다는 미래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 대학시절 너와의 추억들은 누군가에겐 신선한 경험으로, 또는 가난함 그 자체 였을지도 모르겠다.
타인이 뭐라 생각하든 그것이 나에겐 경험이자, 추억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허나, 이젠 완전히 남이 되어버린 나는 어느 새 그 추억들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가난했었다는 시선으로.
.....라면이 다 익었다.
계란을 풀어넣는다.
2개를 풀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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