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
감독 : 신카이 마코토
장르 : 애니메이션
개봉일 : 2019. 10. 30 개봉, 2020. 5. 21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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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작품, 그러나 들여보면 좋은 작품이기도 한.
신카이 마코토 라는 이름을 들어보면 영상미에 한해서 보증수표와도 같다.
풍경 속에, 물건 속에, 일상생활 속에서 드러내는 그의 세밀한 빛의 표현들은 그의 이름이 걸린 작품 소식을 들을 때마다 영상에 대해 묘한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그런 의미의 연장선에서 날씨의 아이 역시 엄청난 작화를 자랑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빛 뿐만 아니라 도쿄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작화까지 곁들어서 감탄을 자아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유독 뛰어난 것이겠지만, 필자는 이런 작화를 좋아한다. 현실과 분간이 안되는 극사실주의가 아니라, 누가봐도 이것은 그림인데, 최대한 현실적 배경을 담아내는 듯한 그런 작화.
그러나 아쉬운 것은 역시나 스토리다. 개연성이 조금 부족하다고 할까. 2시간 안에 최대한 담아내고자 이야기의 전개를 빠르게 할 수 밖에 없었다지만, 이야기의 전개속도는 몰입감을 방해할 정도다. 두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으면 차라리 과감하게 주변 이야기들을 더 쳐내고 집중했어도 좋았을텐데, 배경 설명을 하려다보니 떡밥이 미회수되거나 맥거핀으로 남아버렸다. 그렇다고 확실한 설명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다. 두 주인공 이외에 주변부 배경은 두루뭉실한 것이 원래 '세카이계'라는 장르의 특성이 그렇다고는 하지만서도 스토리가 몰입감에 방해가 된다는 것은 분명 스토리에 대한 작가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고 있던가.
영상미, 연출에서는 매우 뛰어나지만, 스토리의 전개에서는 아쉬운 작품이다. 그러나 날씨를 통해 어른과 아이들의 세계에 대한 것을 담아내려 한 시도는 매우 좋았다. 그렇지만 두루뭉실한 느낌으로 빠른 스토리 전개로 작가의 의도를 눈치채기 어렵다는 것도 아쉬움을 더한다.
비, 햇빛, 그리고 소년과 소녀.
작품의 이름이 '날씨의 아이'인 것처럼 여기서 날씨는 중요한 것을 상징하고 있다.
비는 작품을 통틀어 내내 도쿄에 내리고 있으며, 이러한 비로 인해 시민들은 고통을 받고 있다. 그들은 여러 이유로 햇빛이 나는 날씨가 필요한데, 그러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맑음 소녀'인 히나다. 비와 햇빛은 상반된 것을 의미하며, 시민들이 부정하는 것과 긍정하는 것으로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비는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이지만, 햇빛은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다.
햇빛은 또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것은 일상적인 도쿄다. 겉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는, 현실적인 모습의 도쿄. 모두가 행복해하는 도쿄.
그러나 그 도쿄 속에 어린 여자 주인공인 '히나'는 없다. 히나는 어린 남동생과 둘이 살고 있지만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관심이라고는 '둘이서만 여기서 사는 건 문제가 된다'는 경찰관의 형식적인 말뿐이다. 그러나 그런 히나가 맑은 날씨를 가져올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밝혀지고 나서야 여기저기서 관심을 갖는다. 섬에서 자란 남자 주인공인 호다카는 성공하고 싶어서 도쿄로 올라왔다. (비 내리는 섬에서 햇빛이 보여 호다카가 쫓아가는 장면을 삽입했는데 이는 호다카가 도쿄로 올라오게 된 것을 상징하고 있다.) 도쿄의 쓴 맛에 좌절하던 중 호다카는 어른인 '스가'를 만나게 된다. 스가는 역시 어릴 때 도쿄로 올라왔고 이젠 어찌저찌 자리잡아 살고 있는 어른이다. 유일하게 호다카를 이해하고, 관심을 갖는 어른이다. 결론적으로 햇빛이 상징하는 것은 모든 이들이 선망하게 만드는 도쿄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소년과 소녀는 역시 그런 꿈을 갖고 햇빛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고. 그들이 햇빛 속으로 뛰어들고, 날씨를 이용해 돈을 벌면서 햇빛을 좋아하게 되는 과정은 이러한 현실적인 도쿄, 어른들의 세계에 동화되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른이 되어버린 스가 역시 모종의 이유로 햇빛이 비치는 날씨를 원하고 있다.
전체와 개인
비가 내리는 도쿄의 날씨를 끝내려면 햇빛을 가져올 수 있는 히나의 희생이 필요하다. 히나 한 명 희생하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도쿄로 돌아갈 수 있다. 이런 상황 앞에서 히나와 호다카는 선택해야만 한다. 한 명을 희생해서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것인가. 지난 날을 통해 그들은 햇빛이라는 날씨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햇빛을 통해 돈도 벌어봤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도 받아봤다. 어느 누구도 히나에게 희생을 강요하진 않지만, 그 관심들과 행복해하던 모습들은 히나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내적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 그들은 선택해야만 한다.
이 애니메이션 날씨의 대립을 통해 어른들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를 나타내고, 그 속에 개인의 희생과 전체적 사고에 대한 고민들까지도 담아냈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괜찮은 작품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징성들이 두루뭉실한 배경 설명과 빠른 스토리 전개로 묻혀 버렸다는 것이지만. 아쉬운 작품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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