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인터넷상에서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모 배우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한다.
애호박으로 맞아 봤어요? (코찡긋)
그놈의 '애호박' 애호박 사건이다.
이 사건의 본질을 생각보다 단순하다. SNS의 단점이 제대로 부각된 사건이라 보면 된다.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SNS의 장점은 바로 익명성이다. 하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모니터 너머로 있는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대통령인지, 연쇄 살인마인지 알게 뭐야. 상대방에 관한 모든 정보를 떠나 편견을 벗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솔직하게' 내뱉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SNS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온전히 발화자의 생활 환경, 경험 등에 의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A와 B가 대화를 하는데, A는 A의 경험에만 비추어 '말할 뿐이고', B 역시도 B의 경험에만 비추어 '말할 뿐'이다. 여기서 수신자 입장에 대한 고려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알 수가 없기에. 하지만 그로 인해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자기 할 말만 내뱉는 형국이 되고 만다.
만약, 모 배우가 상대방이 '여성'이고, '폭력을 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때, '맞아 봤어요?'라고 말을 했을까? 분명히 하지 않았으라 생각한다. 상대방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도 없는데, 어떻게 모든 것을 고려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일상에서 대화를 할 때 상대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보를 캐치하고, 사리분별하여 대화한다. 사기를 당한 적이 있는 친한 친구 앞에서, "야, 사기나 한번 크게 쳐볼까?"라고 말하는 미친놈이 어딨겠는가. (.....현실은 있다.) 혹은 친한 친구가 사고로 인해 팔을 잃었는데, 그 친구 앞에서 "에이, 병신새끼"라고 말할 사람이 어딨겠는가.
대화라는 것이 그렇다.
상대방의 정보를 캐치하여, 수신자 입장을 생각하여, 발화자는 말하고, 수신자는 발화자의 입장을 어느 정도 고려해서 답변을 한다. 하지만 SNS에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현실에서의 친구라면야 어느 정도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인터넷상에서 만난 사람을 대체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 사람이 내뱉는 모든 것들이 거짓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여자인 척하는 남자들도 있고, 돈 많이 번다고 허세 부리는 애들도 있다. 인터넷에서만큼은 내가 짱인 것이다. 지금 당장 이 글에서도 내가 어느 국가의 석유부자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인증'이 없는 한 그것은 거짓말이라 믿을게 뻔하다.
모 배우는 그런 상황에서 그냥 농담으로 받아쳤을 뿐이다.
그런데 괜히 모르는 사람이 와서 "한남충"이네요. 하면서 비하했다면 기분이 나빠질만 하다.
생각해보라.
친구끼리 "바보야." "멍청아" 이렇게 대화하고 있는데, 괜시리 제 3자가 나타나서, "아니, 친구에게 바보라뇨. 말이 진짜 험하시네요. 역시 생긴대로 논다더니" 말을 하면, 기분이 안 나쁠 사람이 어딨는가.
SNS 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정보들은 '인증'이 없으면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
그것을 모 배우가 지적했더니, 상대방의 대응은 왜 우리가 그것을 입증해야 하냐며 따진다. 2차 가해를 했다고 화를 낸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이 글에서만큼은 석유왕이 될 수도 있다. '사실 난 금괴 100톤을 지하금고에 숨겨놨고, 어느 나라의 석유 재벌인데, 차마 밝히지 못하고 있다.' 라고 글을 썼다고 해서, 내가 진짜 금괴를 100톤 가지고 있고, 석유 재벌이라 생각하는 분은 없으리라 믿는다. 사진이든, 뭐든 간에 '인증'을 해야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 배우는 말한다.
설령, 너희들이 정말 피해자라고 해서, 익명 뒤에 숨어서, 집단으로 한 사람을 조리돌림하는 것이 정당하냐고. 그렇다. 가령 A라는 사람이 사기를 당해서 전재산을 날렸다고 하자. 그러자 A가 나 사기 당할 때, 도와주지 않았던 사람들, 무관심 했던 사람들 모두 동조자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고 다닌다. 그렇다면 우리는 A를 너그럽게 봐줘야할까? A가 사기를 당한 피해자니까, 다른 모든 이들에게 사기를 치고 다니는 것을 용서해줘야 할까? 답은 아니다.
그렇다.
여성들이 일상에서도 성희롱을 당하는 것, 밤길에 범죄자의 표적이 되는 것. 성범죄의 대상이 되는 것. 이것들은 정말 '일어나는 일'이고, '해결해야 할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해결방안은 20~30대 남성을 향해 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게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치안이 안 좋아서 밤길에 여성들이 위험하니까, 경찰 단속을 강화해주세요. 성범죄에 대해 형량을 높여주세요. 사내 성희롱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관리감독 해주세요. 남자들도 좀 더 경각심을 갖고, 일상언어 사용에 주의해주세요.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잘해주세요. 이렇게. 각 분야별에 따라서 대응책이 만들어지도록 국가에게 요구를 해야지, 한남충이라 백말 욕해봐야 소용없다. 오히려 20~30대 남성들에게 우리 목소리에 귀기울여서 같이 한 목소리를 내주라고 해야 한다.
모 배우가 말한 것처럼 나와 적으로 나누고, 서로 증오해서, 과연 얻어지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노이즈 마케팅'처럼 초창기에 미러링은 '관심을 환기'했다. 하지만 필자가 계속 강조했던 것처럼, '미러링' 뒤에는 남은 것이 없다. 관심을 이끄는데 목적을 달성했으면, 이제는 좀 더 연대를 위한 운동으로 가야함이 맞지 않을까. '미러링'이 계속 된 결과, 남은 것이라곤 서로에 대한 층오와 차별뿐이다. 오히려 남성들의 여혐을 강화하는 작용을 하고 있는 셈이다.
원론적으로, 대화라는 것은 발화자와 수신자가 서로를 고려해서 말하고, 답하면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커뮤케이션이다. 그렇기에 상대방을 고려해서 조심스럽게 말해야 한다는 측의 이야기가 옳긴 하다. 하지만 SNS상에서 상대방을 어떻게 고려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필자가 가족여행을 갔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하는데,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들이 이 트위터를 보고 상처 입으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해야 하나. 세상에는 수십억명의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다. 각자 트라우마도 있고, 상처도 있다. 그것을 모두 다 고려해서 SNS에 글을 써야한다면, 과연 어떻게 글을 쓸 수 있고, 대답할 수 있을까.
설령, 그것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다면, 좋게 말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애호박으로 맞아보실래요?'라는 말에는 폭력성이 내포되어 있어 상대방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으니, 조심해주세요. 라고 공손히 말했다면, 과연 모 배우가 날카롭게 대응했을까?
그것에 대해 지적하면,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니 뭐니 난리치겠지만, 대화에서 공손한 말은 남녀를 떠나서 최소한의 기본 예의다. 굳이 시비털듯이 한남이네요. 해놓고 날카롭게 대응하니, 대응 자세가 불량하다고 말하는 건 대체 뭔가. 시비 털어놓고, 화내지 말라는 건, 이건 뭐 대화하자는 건지, 싸우자는 건지... 그래놓고 '한남은 한국 남자 줄임말이요.' 하면서 욕을 안했다고 약올리듯 회피해간다. 명백히 시비조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어느 여자분에게 '뇌가 참 청순하다 못해서 깨끗하네요.'라고 말했다면, 과연 이걸 곧이 곧대로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언어라는 것은 약속이고, 그 약속이 무엇은 의미하는가를 가지고 사람들은 판단한다.
여러모로 서로 말이 오가면서 판이 커진 느낌이 있지만서도 이 사건의 본질은 결국 단순한 SNS상 '대화'의 문제다.
정리
본질 : SNS상에서 대화란 없다. 익명성의 단점이 부각된 사건
배우 주장
1. SNS상에서 상대방이 누군지 모르는데 내가 대답을 어찌해야 하나.
2. 가령 상대방의 말이 맞더라도, 익명성에 숨어 집단으로 언어폭력을 행한 너네들이 정당하냐.
커뮤니티 주장
1. 상대방을 고려해서 말을 해야지,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
2. 이것은 약자와 피해자들을 위한 정당한 사회적 운동이다.
결론
필자는 배우의 주장이 논리적이고 더 설득적이라 생각한다.
원론적으로 상대방을 고려하는 대답이 중요하나, 익명성의 특성상 고려해서 대답할 수가 없다.
피해자, 약자에 대한 처우 개선, 인식 개선, 지원 등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피해자나 약자의 범죄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진 못한다. 다른 층위의 문제다.
첨언.
SNS, 커뮤니티의 문제점은 옹호자들에 의해 자신의 존재를 과대평가하게 된다는 점이고, 어느 순간 인터넷 권력에 탐닉하게 된다는 점이다. 자신의 존재를 과대평가하고, 인터넷 권력에 탐닉하면 할수록, 식견은 좁아지고, 아집만 남아, 타인과의 교류를 잊어버리는 현실의 자신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현실에서도 못할 말은 인터넷에서도 하지 말라.
현실이든 온라인이든 대화를 하려면 대화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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