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입체적인 사람과 사람을 판단하는 이미지의 단면성

어둠속검은고양이 2019. 7. 9. 19:10

며칠 전부터 '이미지'에 관하여 글을 한편 쓰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최근에 어떤 사건이 하나 터졌다. 공인이었던 그는 이번 일로 과거에 했던 발언까지 새롭게 조명받았고, 과거의 발언들을 뒤짚는듯한 행동 때문에 결국 위선자가 되고 말았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이런 의미에서 인터넷의 기록은 참으로 무섭다.
과거엔 적절한 저장매체 수단이 없었기에 TV로 기록되는 공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선적인 모습을 감추기 쉬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감추고자 해서 감춘 것이 아니라 저장보다 망각이 더 크게 작용했기에 자연스럽게 잊혀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젠 망각보다 저장이 더 크게 작용한다. 각종 녹음기, 카메라, 인터넷, 휴대폰, 외장하드, USB, 비디오 카메라 등등 저장매체는 차고 넘치며, 이러한 저장매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우리는 본인의 SNS 뿐만 아니라, 타인의 SNS에도 알게 모르게 기록되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필자가 티스토리를 익명으로 작성하는 이유 중 하나다. 나의 생각과 경험들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기록하고 싶은 욕망과는 달리 이러한 것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게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필자는 그런 이유도 SNS를 하지 않는다.

다시 본래의 취지로 돌아와서 '이미지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어떤 사람을 향해 갖게 되는 편견이나 판단에 해당하는 그 무언가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나 자신에 대한 수 많은 이미지를 가지게 되고, 반대로 우리의 마음속에도 우리만의 잣대로 판단하게 만드는,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나 말, 사건을 통해 형성되기 시작해서 데이터의 축적을 통해 완성되어 간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은 참 순한 사람이야.' '그 사람은 성격이 불 같아.' 와 같은 것이다. 허나 이러한 이미지는 '입체적인 사람'과는 달리 하나의 단면적인 판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도 같다.
프로크루스테스가 사람을 납치해와서 팔다리가 침대보다 짧으면 늘려서 죽이고, 팔다리가 침대보다 길면 잘라서 죽였던 것처럼, 이제부터 '판단하게 될' 사람을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이미지에 맞춰서 판단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에 대해 지니고 있는 이미지가 상대방의 행동과 일치하지 않을 때 당혹해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항상 아이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였던 사람을 보고서 그 사람은 자상하다는 이미지가 구축되었는데, 누군가에게 불같이 화내는 모습을 보고서 '저 사람에게 저런 모습이?'하고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허나, 엄밀히 말해서, 아이에게 자상한 것과 사람이 부드럽거나 너그러운 것은 별 상관관계가 없다. 아이에게'만' 자상한 사람일 수도 있고, 자상하지만 자신만의 선을 넘으면 칼같이 잘라내는 차가운 면모를 지닌 사람일 수도 있다. 결국 상대방의 각 상황에 대한 모든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우린 늘 단면만을 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판단내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에 대한 경험과 판단은 늘 일정한 시간이 요구되는데, 그 기간동안 사람이 또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에 대해 자상했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아이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게 되면서 아이에게 더이상 자상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기존에 이미 내렸던 판단까지도 또 다시 수정하게 될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어떤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늘 단면적으로만 이루어지게 된다는 사실과 사람은 입체적이란 것을 분명히 숙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상대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되어 잘못된 인연으로서 큰 화를 겪게 되거나, 아니면 중요한 순간에 당황하여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되거나, 혹은 말 그대로 쓸모없는 논쟁만을 일삼게 될 것이다.

어떤 특정 대상에 대해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논쟁은 대부분 이러한 이유로 쓸모가 없다.
왜냐면 대상의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없이 인터넷에 기록되어 있는 단면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필자가 '절대적 관념화, 이분법적 다툼'이라는 글에서 썼듯이 이분법적인 구도로 싸움만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싸움에서 등장하는 것은 항상 이중적인 모습, 위선자 라는 발언이다. 허나 인간이 태어나 죽는 날까지 자신의 첫 입장을 그대로 고수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 것이며, 말과 행동이 항상 일치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 것인가. 사람은 늘 변화하고, 입장도 변하고, 공적-사적 영역에 따라 말과 행동이 변하기도 한다.

사람은 입체적이다.
사람은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늘 부분에 관하여 평면적으로만 이루어진다.
사람에 관한 기록들은 늘 그 때, 그 상황에서의 평면적인 정보만을 제공한다.
우리는 위 사실을 염두하여 사람을 판단해야만 한다.